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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아이디어

선주들이 돈 한푼 없이도 조선사에 선박을 주문할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



최근(2023년 3월 기준) 유럽 스위스 은행인 Credit Swiss(이하 CS)가 파산하면서, UBS에 인수가 됐죠. 후순위채권(신종자본증권, AT1)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본인들의 채권이 상각되면서 100% 손실을 입었는데요. 채권도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최근 널리 퍼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할려고 하는 것은 채권이 아니라 CS가 쏘아올린 조선업, 해운업에 대한 피해예측입니다.

  CS는 그리스에 많은 대출을 해주고 있었어요. 그리스하면 민주주의, 아테네 역사 등이 생각나죠. 섬 나라인 것도 다들 알 겁니다. 섬나라이다 보니 선박이 굉장히 발달한 나라에요. 그래서, 그리스인 선주들이 조선업이 발달한 우리나라에 많은 주문을 넣어왔죠. 그런데, 이번에 UBS가 선박관련 대출을 중단하겠다고 했는데요. 왜 중단하겠다고 했을까요?

  사실, 조선업, 해운업은 굉장히 싸이클을 많이 타는 산업이에요. 예를 들면,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활성화되면 여러 물자들이 운반되겠죠. 해상운임이 가성비가 가장 뛰어나 물품의 90% 이상이 선박을 통해 전세계 물자들이 이동하고 있을 정도에요. 자연스레 해운이 바빠지면 BDI지수(발틱해 건화물 지수), SCFI(상하이 컨테이너 지수)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선주들은 선박을 더 짓겠죠. 운행을 더 많이하면 돈을 더 버니깐요. 그런데, 혼자 선박을 늘리는게 아니에요. 너도 나도 선주들이 선박을 늘리기 시작합니다. 그 결과, 시장에 선박공급과잉이 나타나고 해상운임이 떨어져 수익률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선주들은 감가상각이 억단위로 되는 선박을 축소하거나 폐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다시 경기가 좋아지면, 선박이 부족해져 해상운임이 오르고 다시 싸이클을 반복하는 식인 것이죠.

  그러다 보니, 돈을 벌때는 버는데 못벌 때는 정말 못법니다. 그러면, CS입장에서 선주들한테 쉽게 돈을 빌려줄 수 있을까요? 만일 선주들이 망하기라도 한다면 대손충당금(은행이 대출을 못받을 때 매꿔야하는 금액)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주주들의 눈치를 보게 될 겁니다. 특히나 요즘 같은 경기가 불확실 할 때는 더욱더 그렇죠.

  대한민국의 상황을 봐볼까요? 대한민국은 배를 잘만드는 거북선의 나라이죠. 실제로, 전세계 조선업은 중국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37% M/S를 갖는 1위인 나라입니다. 다만, 세계 7위 해운사였던 한진해운이 망했던 경험을 갖고 있는데요. 이때, 정부는 한진해운은 죽도록 내비두고 현대상선(현 HMM)을 살리게 되죠. 한진해운을 왜 파산하도록 냅뒀냐는 여론이 있었지만, 한진해운은 해상운임은 계속 내려가서 돈은 못버는데, 용선료(조선사 또는 선주들한테 빌린 선박을 갚을 비용)은 계속 내야해서 적자가 계속쌓여갔죠.

  정부는 그러면 왜 HMM은 살렸을까요? 조선업, 해운업이 어마무시하게 고용효과를 내기 때문이죠. 특히, 조선업 1위인 대한민국에서 관련한 해운사 하나가 없어진다? 조선사 발주량도 없어질 것이고 그 지역경제는 말도 못하게 사라지게 됩니다. 사실, 배를 만드는 것 자체가 아직까지 자동화가 안됐는데요. 왜냐면, 사이즈도 클 뿐더러 워낙 다양하고 많은 부품이 들어가기 때문에 3D업종으로 분류될 정도로 많은 인력들이 필요합니다. 오죽하면 현대중공업이 외국인 근로자들을 끌어모으려고 노력중이겠어요.


  이만 큼 중요한 산업이다 보니 정부가 마냥 죽도록 냅둘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선주들이 조선사들한테 돈 한 푼 없이 주문을 넣을 수 있는 마법의 효과가 나옵니다. 정부가 뒷받침하고 있다보니까 선주들이 조선사에 주문을 넣을 때, 대출금을 80% 이상을 보장해줘요. 부동산으로 따지면, LTV가 80% 이상인 것입니다. 10억짜리 아파트하나 사려고 하는데 8억을 그냥 빌려줘요. 선주의 재무제표가 얼마나 튼튼한지는 우선순위가 아닙니다. 조선사에 선박 발주를 넣으면, 어쨌든 조선사는 배를 만들기 시작하고 고용효과 경제효과 둘 다 낼테니깐요. 그래서, 사모펀드는 선주들의 금융을 지원하지 않아요. 싸이클 산업에다가 수익성은 낮은데 위험성은 파산까지 고려하면 100%가 될 수 있으니깐요. 그래서, HMM의 대주주, 그 다음 주주가 산업은행, 한국해양진흥공사인 이유입니다.

  어쨌든 정부 돈이 결국 그 나라 사람들의 돈일 텐데, 과연 이게 효과적일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